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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따라/시(時)ㆍ문(文)ㆍ필(筆)ㆍ담(談)

(시) 겨울의 구름들

by 금대봉 2022. 12. 19.

 

 

겨울이 왔다

詩 /  류시화

 

내 집 앞의 거리는 눈에 덮이고

헌 옷을 입은 자들이 지나간다

그들 중의 두세 명을 나는 알고

더 많은 다른 얼굴들은 알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소리쳐 그들을 부른다 내 목소리는

그곳까지 들리지 않는다

겨울은 저 아래 길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열중해 있는 것이다

 

 

 

 

겨울이 왔다

나의 삶은 하찮은 것이었다

밤에는 다만 등불 아래서 책을 읽고 온갖

부질없이 깊은 생각들에 사로잡힐 때

늘어뜨러진 가지, 때 아닌 붉은 열매들이

머리 위에서 창을 두드리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희고 창백한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면

겨울의 구름들이

붉은 잎들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내 집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홀로 있었다 등불의 심지만을 들여다보며

변함 없는 어떤 흐름이 갑자기 멈춘 일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책장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곤 했다, 겨울이 왔다

나의 삶은 하찮은 것이었고

나는 오갈 데가 없었다

내 집 지붕 위로

겨울의 구름들이 흘러가는 곳

나는 침묵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침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람은 그렇게 오래 불고 조용히 속삭이면서

더 큰 물결을 내집 뒤로 데리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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