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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따라/국내여행

광해군묘(남양주) .... 2026.07.02

by 금대봉 2026. 7. 3.

 

 

 

광해군묘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337-4

 

 

 

사적 제363호로 지정된 광해군묘는 조선 제15대 국왕 광해군(1575~1641)과 문성군부인 류씨(1576~1623)의 묘이다. 폐위된 왕의 묘이기 때문에 연산군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는 제외되었다. 왕자의 예에 따라 안장되었기 때문에 묘역 관리도 왕의 무덤인 능에 비해 조악하다. 방문은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자차를 이용했다. 

 

 

 

영락동산 가는 길

 

 

굳게 닫힌 광해군묘 입구의 철문

 

 

 

사적지 울타리 바깥에서 촬영한 광해군묘

 

 

 

 

 

조선의 역사상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왕, 광해군 이야기 1  (왕릉이 되지 못한 묘)

 

 

조선의 왕과 왕비가 묻힌 곳을 능(陵)이라 부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철저히 관리된다. 하지만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군(君)으로 강등되었기 때문에 능(陵)이 아닌 묘(墓)에 묻히게 되어 '광해군묘'라는 초라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조선 왕조에서 '왕이었으나 왕릉에 묻히지 못한 자는 광해군과 연산군 둘 뿐이다. 화려한 석물이나 정자각 없이 덤불 속에 조용히 자리한 묘역의 쓸쓸함과 초라함이 한때 권력 암투의 무상함을 일깨워준다.

 


 

 

 

조선의 역사상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왕, 광해군 이야기 2  ("어머니 곁에 묻어다오")

 


유배지 제주도에서 남긴 유언이다. 광해군은 폐위 후 강화도를 거쳐 가장 척박한 유배지였던 제주도에서 무려 15년을 더 버티다 6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유언은 "내가 죽으면 옹주(딸)의 처가가 있는 이곳이 아니라, 조정이 있는 한양 근처이자 어머니(공빈 김씨)의 묘 발치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현재 광해군묘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친어머니인 공빈 김씨의 무덤(성묘)이 있다. 평생을 권력암투 속에서 고독하게 보낸 왕이 결국 죽어서는 '어머니의 품'을 찾았다는 서사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치트키이다.


 

 

조선의 역사상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왕, 광해군 이야기 3  (죽어서도 나란히 누운 두 사람)

 


광해군묘에 가면 무덤 두 개가 나란히 있는 쌍무덤 형태를 볼 수 있다. 오른쪽이 광해군, 왼쪽이 그의 부인인 문성군부인 류씨의 묘이다. 부인 류씨는 광해군이 폐위된 직후 강화도 유배 시절, 아들과 며느리가 탈출하려다 붙잡혀 자결하는 비극을 겪고 화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은 그 후로도 십수 년을 홀로 더 살아남아 풍파를 겪어가며, 유배 생활을 견디다가 제주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결국 죽어서는 부인과 나란히 누워 서로를 위로하고 있는 듯한 묘역의 배치가 묘한 여운을 남겨준다.


 

 

조선의 역사상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왕, 광해군 이야기 4  (비공개 지역의 신비함 - 쉽게 갈 수 없어 더 궁금한 곳)



묘역의 위치는 남양주 진건읍 영락동산 부근의 산 속이다. 찾아가기가 복잡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자차 이용이 편한 곳이다. 광해군묘는 현재 사적지 원형 보존과 훼손 방지를 위해 비공개 관리 중이다. 특별 관람 허가가 아닌 일반 관람은 불가하며, 아쉽지만 사적지 울타리 바깥에서만 묘역의 실루엣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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