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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따라/국내여행

흥천사(서울) .... 2026.06.24

by 금대봉 2026. 6. 24.

 

 

 

흥천사 서울 성북구 흥천사길 29

 

 

 

흥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다. 조선 제1대 태조비 신덕왕후의 원찰로서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이다. 1395년(태조 4)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태조가 능지를 정릉에 조영(造營)하고,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1396년 창건하기 시작하여 1397년 170여 칸이나 되는 대가람이 완성되었다.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에서 400m가량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정릉 탐방을 마치고 나서 들러봤다. 

 

 

 

 

도심의 흥천사 전경

 

 

 

▼ 흥천사 대방 (국가등록문화유산 제583호)
1865년 흥선대원군이 조선의 부흥을 꿈꾸며, 직접 시주하고, 현판까지 직접 쓴 전각이다.

 

한국의 전통적 가람 배치는 법당 정면에 누각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흥천사는 법당인 극락보전 앞에 누각 대신 대방(큰방)을 배치했다. 이는 조선시대 왕실의 원찰인 능찰에서 보이는 가람배치 방식이다.

 

H자의 평면 형태의 대방은 누각, 방사, 법당, 숙소, 부엌 등의 모든 기능을 합친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건립 시기는 사중에 보관 중인 현판 기문(京畿右道楊州牧地三角山興天寺寮舍重創記文)을 근거로 고종 2년에 중창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방 왼쪽 뷰

 

대방 오른쪽 뷰

 

종각은 1942년 중건되었고, 현판은 3·1운동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33인의 민족대표 중 한 명인 오세창이 쓴 글씨다. 

 

대방 건너편의 약사전

 

 

 

▼ 극락보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66호)

1853년(철종 4) 구봉 계장(九峰啓壯) 스님이 건축했다. 극락보전의 구조와 형태는 조선시대 말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이며, 19세기 사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화려한 목조 건축물이다. 서울에서는 희귀한 사찰 건축물로 귀중하게 평가받고 있다

 

 

 

 

극락보전에 모신 불상

 

 

 

▼ 관음전

보물로 지정된 42수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는데, 기도 중인 분들이 계셔서 관음전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사찰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봉안되어 있는 불상으로서는 흥천사 42수 관음상이 유일하다고 한다. 아래 불상의 사진은 흥천사 홈페이지의 것을 빌려온 것이다.

 

 

 

 

 

 

 

 

▼ 명부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7호)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이다. 1855년(철종 6) 순기스님이 세웠으며, 고종 31년(1894) 중수되었다. 명부전은 옛 목조 건물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면서도 단순하고 소박하게 장엄된 법당으로,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명부전 마당 한쪽에 모셔진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머리에 커다란 돌모자(보개)를 쓰고 인자하게 서 계시는 모습이 특징인데, 민간에서는 자식을 바라는 이들이 기도를 많이 올려 기자불(祈子佛)로도 불렸다. 이 미륵불은 예로부터 간절히 기도를 올리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험한 불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산신각, 독성각 입구

 

독성각 & 산신각

 

 

 

▼ 느티나무어린이집

사찰 뒤편으로 흥천사에서 부지를 제공한 흥천어린이집과 느티나무어린이집이 있다. 두 곳 모두 성북구에서 건립한 공립유치원이고, 서울시에서 최초로 세워진 한옥 양식의 어린이집 건축물이기도 하다.

 

 

 

 

첫 방문이다보니 구석구석을 다 담지 못했다. 용화전, 노전, 삼각선원, 7층석탑 등 둘러보지 못한 전각들은 다음 방문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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