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길따라/국내여행

정릉(서울) .... 2026.06.24

by 금대봉 2026. 6. 24.

 

 

정릉 서울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

 

 

 

사적 제208호이자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릉은 조선 왕조의 최초 왕비의 능이다. 조선 1대 태조 이성계의 계비(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1356년 추정 ~1396)가 주인공이다. 정릉은 오랜 수난을 겪고 축소 이전되었기 때문에 다른 조선 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고 다소 초라한 편이다. 처음에는 도성 내 취현방에 조성되었으나, 140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1669년 신덕왕후를 종묘에 부묘하면서 정자각 등을 건립해 왕릉의 규모에 맞추었다. 

 

 

 

 

 

 

입장료 : 만 25~64세 기준 1,000원)

주차비 : 무료

휴관일 : 매주 월요일

관람시간 : 아래 사진 내용 참조

 

 

 

 

 

매표소를 통과하면 먼저 좌측에 있는 재실부터 만나게 된다. 

 

재실 앞에 있는 보호수 : 느티나무, 수령 388년(2026년 기준)

 

 

 

 

행랑 : 대문, 하인방, 마구간, 창고, 집사방 등이 있는 부속 건물

 

재실 : 제향을 준비하고, 왕릉을 관리하던 영(令)과 참봉(參奉) 등이 사용하던 공간

 

제기고 : 제기를 보관하던 곳

 

유네스코 세계유산 표시석

 

 

재실 입구를 지나서 능역으로 이동한다.

 

 

홍살문

 

ㄱ자 모양의 참도 : 보통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참도가 직선인데, 정릉은 ㄱ자 모양으로 꺾여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판위 : 임금이 능역에 들어서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절(4배)을 하는 곳

 

정자각(정면), 수라간(좌), 수복방(우)

 

정자각 내부의 제향상(제상)과 제례공간

 

수라간 : 왕릉에 제향을 지낼 때 쓸 제사 음식을 간단히 데우는 등의 준비를 하는 곳

 

수복방 : 능에서 화재나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수복이 근무하는 곳

 

비각

 

 

능침은 출입금지 구역이라 진입이 안되므로 멀리서 촬영했음

 

 

 

정릉의 파란만장한 수난의 역사
원래 정릉은 도성 안쪽에 있었다. 지금의 영국대사관 근처 정동에 거대하게 조성되었으나, 신덕왕후를 미워했던 태종 이방원이 도성 밖인 현재의 위치로 능을 옮겨버렸다. 이때 정릉에 있던 정자각을 헐어버리고, 병풍석 등의 석물들은 홍수로 무너진 청계천의 다리인 광통교를 보수하는 데 쓰게 하여 백성들이 밟고 다니도록 했다. 현재도 청계천 광통교에 가면 거꾸로 박힌 정릉의 석물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 신덕왕후 무덤

소박한 봉분이다. 문인석, 석마, 석양, 석호 등이 배치되어 있고, 난간석과 병풍석은 없다. 석물 중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 등 일부만 옛 정동의 능에서 옮겨온 유물이라 한다. 

 

 

 

 

 

▼ 소전대(燒錢臺)

축문을 태우던 시설인데 조선 초기에만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석물이다. 그래서 조선 초기의 능인 건원릉, 헌릉, 정릉 등에서만 볼 수 있는 석물이다. 한동안 정릉의 소전대가 유실되었다가 2009년 약수터 근처에서 발견되어 원래의 자리인 정자각 좌측으로 옮겨왔다. 이방원이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을 급을 깎아내리면서도 차마 초기의 제례 시설을 완전히 없애진 못했던 흔적이기도 하다.

 

 

 

 

 

▼ 정릉 숲길

정릉은 도심 속에서 울창한 숲을 즐기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지정된 곳에 한해서 산책을 할 수 있는데, 특히 가을철 단풍 때나 녹음이 싱그러운 여름철에는 가볍게 걷기 좋은 힐링 코스로 인기가 높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