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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따라/국내여행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 중악석굴 .... 2025.12.21

by 금대봉 2025. 12. 22.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과 중악석굴은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어서 탐방을 위해서는 약간의 등산이 필요하다. 사지마을 등산로 입구에서 숲길을 따라 편도 500m쯤 들어가야 한다. 사지마을 안쪽 끝에는 김덕숭 효자문이 있어 함께 들러볼 수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장수굴(중악석글) 방향으로 올라감

 

백원제(百源齊) : 김덕숭 효자각(충청북도 기념물 제134호)과 함께 강릉 김씨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 

 

마애여래입상과 중악석굴(일명 장수굴)은 같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사곡리 마애여래입상(충북유형문화재 제124호)은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을 가진 커다란 암벽에 새긴 불상이다. 불상 높이는 약 12m로 마애불치고 작지 않은 규모다. 바위벽을 다듬어 전신광배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입체감이 살아난 양각으로 새겼다. 단아한 스님 형태의 얼굴 표정과 어깨까지 늘어진 큰 귀가 특징이다. 양어깨에 걸친 법의(法衣)는 U자형으로 흘러내리고, 왼팔 등에도 촘촘하게 옷 주름선이 형성되어 있다. 오른손은 올리고 왼손은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불상은 둥근 얼굴에 부드러운 세부표현과 엷은 미소의 묘사로 부처의 자비로운 얼굴을 표현했으며,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높은 부조로 입체감이 있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중악석글 = 장수굴

 

 

 

마애불 오른쪽 암벽 하단부에 패어 있는 장수굴(將帥窟)은 신라 김유신 장군이 수련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굴 바깥쪽 벽면에는 나무로 만든 건물 흔적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는 장수굴이 중악석굴로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열전에 의하면 611년(진평왕 33) 김유신이 17세 되던 해에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중악석굴에 들어가서 재계(齋戒)하고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기를 4일간 하니, 한 노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내 이름은 난승(難勝)인데 그대가 아직 어린 나이로 삼국을 통일하고자 하니 장한 일이로다.”고 하고, 비법을 전해주며 “삼가 망녕되이 전하지 말라. 만약 부당하게 이 법을 쓰면 도리어 재앙을 당할 것이니라.”하고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장수굴
김유신 장군의 나이 젊을 때 고구려와 백제, 말갈이 신라 국토를 침공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적을 토평 할 큰 뜻을 품고 혼자 이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맹세하여 기도하기를 "적국이 무도하여 우리 국토를 침공하여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저는 한낱 미신으로 재량과 용기가 없사오나 화란을 없앨 뜻을 품고 있으니 하늘은 저의 뜻을 살피어서 저에게 힘을 빌려 주옵소서" 하고 기도를 하였더니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노인에게서 무예를 닦았다 한다. 또한 장수굴 아래에는 굴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으며 굴 옆에 샘이 있는데 굴 안에서 장군이 공부를 할 때 이 물을 마셨다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이 굴이 울었으며 그대까지 울창하던 산이 하루 만에 민둥산이 되었다고 한다. (진천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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