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의 무제산을 산행하기 전에 들러봤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비각이다. 그 옆에는 김덕숭의 부친, 김천익 숭모비가 있다.

김덕숭 효자각(충청북도 기념물 제 134호)
이 효자문은 조선 세종대의 효자 김덕숭(1373~1448)을 기리기 위한 정려문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 건물이다. 강릉 김씨인 김덕숭은 자는 자수(字修), 호는 모암(慕庵)으로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한산군수(漢山郡守) 등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귀향하여 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이때 김덕숭의 아버지 천익(天益)은 나이가 90세, 김덕숭은 75세였다.
당시 마침 세종이 안질(眼疾)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에 있을 때, 김덕숭의 효행을 듣고 충청감사를 통해 백미 10가마를 특별히 보내 주었다. 공은 즉시 아버지 천익과 함께 세종을 찾아뵙고, 은혜에 감사하다며, 세종에게 공손히 절을 하니 이때 세종은 두 늙은이를 보고 누가 아비이고 아들인지 부자간을 분간할 수 없다고 하며, 의복 한 벌씩을 주었다.
이듬해인 세종 30년(1448) 김덕숭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세종은 김덕숭을 이조참의(吏曹參議)로 벼슬을 높이고 세종이 직접 지은 시(詩) 3수를 내리어 정각(亭閣)을 건립케 했으며,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그의 효행을 기록하게 하였다. 그 후 인조 11년(1631) 효자문을 세웠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김덕숭은 대흥군수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여 여계소(女溪沼)에 앉아서 기도를 드리니 잉어가 튀어나오고,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손가락을 펴 들에 서 있으면 꿩이 날아와 앉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덕숭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효는 백행(百行)의 근원’이란 뜻의 백원정(百源亭)이 세워졌고, 백원서원(百源書院)에 배향(配向)되었다. 진천군 문백면 평사리의 묘소에는 어제시를 새겨 놓았고, 입구에 신도비가 있다.


▼ 효자비는 방형의 대좌에 40×103×23㎝ 크기의 비석을 세웠다. 비의 앞면은 “효자증통정대부이조참의김덕숭지려(孝子贈通政大夫吏曹參議金德崇之閭)”, 뒷면은 효행기를 적었다.

효자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옆면은 풍판(風板)으로 막고, 4면에 홍살을 둘렀다.

▼ 정려문에 현판에 효자증통정대부이조참의행통훈대부한산군수강릉김덕숭지문( 孝子贈通政大夫吏曹參議行通訓大夫韓山郡守江陵金德崇之門)이라 적혀있다. 현판의 날짜는 유명정통 13년(1448년 / 세종 30년), 진십이월일(음력 12월)

처마 밑 가운데에는 임헌회(任憲晦)가 짓고, 전우(田愚)가 쓴 정려기(旌閭記)가 있다.

▼ 김천익 숭모비( 金天益 崇慕碑)
비석에 "정헌대부 행전병공판서 겸교 한성판윤"," 참지의정부사 강릉김공 강른 김공 담천익지비"라 적혀있다. 정헌대부(正憲大夫)는 조선시대 문관 품계 중 정2품 상계에 해당하는 높은 직위이고, 행전병공판서(行典兵工判書)은 각 조(육조)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가의 행정, 군사, 공사(토목·건축 등)를 총괄하는 자리이고, 한성판윤(漢城判尹)은 오늘날로 비교하자면 서울특별시장 겸 수도방위사령관 겸 서울고등법원장 겸 서울고검 검사장에 해당하는 막강한 직위이다. 즉 그가 맡은 직책만으로도 조선 조정의 핵심 관료로서 국가 행정, 군사, 수도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무제산 등산로 입구

백원제(百源齊) : 김덕숭 효자각(충청북도 기념물 제134호)과 함께 강릉 김씨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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