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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따라/시(時)ㆍ문(文)ㆍ필(筆)ㆍ담(談)

(시) 크낙산의 마음

by 금대봉 2022. 10. 21.

 

 

크낙산의 마음

金 光 圭

 

다시 태어날 수 없어

마음이 무거운 날은

편안한 집을 떠나

산으로 간다

 

크낙산 마루터기에서

숨가쁜 걸음 멈추면

사방에 제멋대로 널려진

바위와 수풀 가이없다

 

너울대는 굴참나뭇잎 사이로

삵괭이 가만히 귀기울이고

썩은 나무등걸 위에서

햇볕 쪼이는 도마뱀

 

 

 

 

땅과 하늘을 집삼아

주인도 나그네도 아닌

저 숱한 나무와 짐승들

 

해마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꽃과 벌레들이 부러워

목청껏 야호 외치면

산울림만 혼자서 되돌아 온다

 

옹달샘 옆에 자리를 잡고

삭정이와 낙옆을 모아

불을 지피면 마음은

어린 짐승처럼 가볍게

한낮을 뛰고 날지만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도

아무리 깊은 골짜기에 내려가도

산에서는 주인이 될 수 없다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없다

 

해가 기울어 더욱 아쉬운 

멧새들의 지저귐소리

여울에 섞여 흘러가버리고

 

서늘한 숲의 향기

어둠처럼 피어 오를 때

마음은 산비둘기가 되어
소나무 가지에 내려 앉지만

바위 틈에 잠들고
나뭇잎처럼 썪을 수 없어

 

 

 

 

몸은 나그네 되어

산을 떠난다 그리고

크낙산에서 돌아온 날은

이름없는 산이 되어

집에서 마을에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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