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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따라/국내여행

숭인원, 영휘원(서울) .... 2026.06.11

by 금대봉 2026. 6. 11.

 

 

 

영휘원 숭인원 주차장 서울 동대문구 홍릉로 90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의 숭인원과 영휘원, 세종 영릉 신도비, 그리고 세종대왕기념관을 차례로 들러봤다. 숭인원과 영휘원은 같은 울타리에 있으며, 입장료가 있고, 출입구가 다른 바로 옆자리의 세종 영릉 신도비와 세종대왕기념관은 입장료가 없다. 먼저 들러본 숭인원은 영친왕의 첫째 아들인 이진의 원(후궁이나 왕족의 무덤)이고, 영휘원은 고종황제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원이다.

 

 

 

 

 

 

 

 

 

숭인원 홍살문 & 정자각

 

정자각 & 비각

 

왼쪽은 신계 오른쪽은 어계

 

 

 

정자각의 신계와 어계의 차이
★ 신계 (神階) → 영혼의 길
대개 정자각을 바라보고 왼쪽(동쪽에서 진입할 때 기준)에 위치하며, 돌아가신 왕이나 왕비의 영혼(신령)이 지나다니는 계단이다. 계단의 특징은 사람이 아닌 신이 걷는 길이기 때문에 계단 옆면을 받치는 돌(소맷돌)에 구름문양(운문)이나 화려한 태극 문양, 또는 상서로운 동물(해치 등)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어계에 비해 훨씬 화려하고 격식이 높다.

★ 어계 (御階)  → 임금의 길
대개 정자각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위치한다. 제사를 주관하러 온 살아있는 왕(임금)이 올라가는 계단이다. 계단의 특징은 살아있는 사람이 이용하는 계단이므로, 신계에 비해 문양이 없거나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게 다듬어져 있다. 장식적인 요소보다는 기능적인 계단의 형태를 띤다.

 

 

 

정자각 내부의 제향상(제상)과 제례공간

 

비각(해설 안내문이 없음)

 

 

 

▼ 비석의 글씨

元孫 崇仁園(원손 숭인원)이다. 원손은 임금의 맏손자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는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영친왕(의민황태자)의 첫째 아들인 이진(李晉)을 뜻한다.

 

▼ 망국의 아픔이 담긴 비석의 비밀
보통 조선 왕릉이나 원의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朝鮮國)' 또는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를 먼저 쓰고, 그 뒤에 무덤의 주인을 적는 것이 원칙이다.(예: 바로 옆 영휘원의 표석에는 純獻貴妃 永徽園이라 되어 있으나 일제강점기라 국호가 빠졌고, 일반적인 왕릉에는 조선국 ooo릉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숭인원이 조성된 1922년은 이미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일본의 압박과 간섭으로 인해 앞면에 국호인 '대한'을 넣지 못하고, 단출하게 元孫 崇仁園 다섯 글자만 새기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일제의 압박과 간섭으로 인해 비석 뒷면은 원손 이진의 행적을 기리는 비문을 아예 새기지 못하고, 기록 없이 빈 채로 남겨두어야만 했다.

 

태어난 지 불과 8개월 만에 의문의 요절을 맞이한 아기 원손의 슬픔과 나라를 잃은 대한제국 황실의 쓸쓸한 처지가 비석의 글씨와 흔적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숭인원 묘역 (출입통제 구역이라 가까이 올라가서 촬영할 수 없음)

 

 

 

영휘원 홍살문 & 정자각

 

 

정자각

 

정자각 내부의 제향상(제상)과 제례공간

 

 

고상함이 묻어나는 파스텔 색상의 문살

 

비각

 

비각 해설 안내문의 내용

 

 

 

▼ 국호가 빠져있는 영휘원의 비문 

영휘원 비문에도 숭인원의 비문처럼 국호가 빠져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영휘원이 조성된 해는 1911년이다. 이 역시 1910년 경술국치 바로 다음 해이므로, 이미 나라를 빼앗긴 후였기 때문에 '조선국'이나 '대한제국'을 쓰지 못하고, 애통하게도 국호가 빠진 채 純獻貴妃 永徽園이라고만 새기게 되었다. 

 

 

 

 

영휘원 묘역

 

 

 

재실 2동

 

 

 

 

 

 

재실 왼쪽 건물

 

재실 오른쪽 건물

 

어정

 

 

어정(御井)은 임금이 능에 행차하셨을 때 마시던 우물이다.

 

방문객을 위한 음수대

 

숭인원 영휘원 돌담길

 

옆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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