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태실봉 능선을 오르다가 중턱에서 인종태실을 만났다. 은해사 입구인 천왕문에서 인종태실까지 편도 2.1km가량의 거리인데, 신일저수지까지는 도로가 잘 나있어 순탄하게 이어지다가 산길로 접어드는 540m가량은 급비탈 구간이라서 일반인들이 오르기에는 빡센 편이다. 그렇지만 태실에 도착해 보면 고생을 한만큼 보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왕실의 태실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은해사 천왕문


은해교에서 바라본 계류

천년고찰 은해사를 지나감

신원리캠핑장 방향으로 진행



신일저수지

신일저수지 쉼터에서 산길로 진입


경사가 가팔라서 숨이 턱에 차는 구간임

인종태실이 위치한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팔공산 자락)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팔공산 지맥이 숨 가쁘게 흘러내리다 다시 치솟으며, 꽃봉오리가 맺힌 듯한 신비한 형상을 하고 있다. 게다가 좌청룡 우백호가 완벽하게 감싸고, 앞이 탁 트여 있어, 당대 지관들이 손에 꼽은 하늘이 내린 최고의 명당이라 했다.


영천 인종태실은 조선 제12대 왕인 인종의 탯줄과 태반을 봉안했던 곳으로 역사적, 풍수지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이와 관련된 주요 역사적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인종은 중종과 장경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였다. 어머니인 장경왕후는 인종을 출산한 후 일주일 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보통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3개월 이내에 태실을 조성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인종태실은 그가 태어난 지 6년 뒤인 1521년(중종 16년)에 지어졌다. 이는 적장자이자 차기 왕위 계승권자였던 만큼, 전국에서 가장 훌륭한 길지를 신중하게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인종은 세자 생활을 25년이나 거친 끝에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8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했다. 31살에 후사도 없이 단명한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명종 1년(1546년) 왕의 태실에 걸맞게 석물을 두르고, 규모를 크게 키우는 가봉(加封)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28년, 일제는 조선 왕실의 정기를 끊고, 관리 효율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전국에 흩어져 있던 태실들을 파헤쳤다. 이때 인종의 태를 담은 항아리(내항아리 & 외항아리)와 태의 안장 기록이 담긴 태지석도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영천에 있던 태실 구조물과 석물들은 흩어지고, 파괴된 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1999년부터 체계적인 발굴 조사를 거쳐, 2007년에 경상북도와 은해사가 협력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당시 가봉비의 하단 귀부(거북이 모양 받침돌)와 지붕 격인 이수는 옛 석재를 그대로 활용하였으며, 깨진 비신(비석 몸체) 등은 새롭게 조성했다. 출토된 인종의 태항아리와 유물들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지역 사회와 학계에서는 이를 원래 위치인 영천 태실로 다시 봉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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