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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따라/국내여행

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울) .... 2026.09.16

by 금대봉 2026.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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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98

 

 

 

 

 

관람안내

● 관람시간 : 10:00~18:00 (수, 토 21:00까지) →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 휴관일 : 1월 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

● 관람료 : 무료 

 

● 주차장 : 10대만 주차 가능 (매우 협소)

● 지하철 이용 시
☞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약 250m)
☞ 3호선 경복궁역 6번 출구 (약 500m)
☞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약 800m)
☞ 1호선 종각역 1번 또는 2번 출구 (약 900m)

 

 

박물관 주출입구

 

안내데스크

 

 

 

 


8층 - 옥상정원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 북악산과 인왕산의 뷰가 펼쳐지는 박물관 옥상정원의 핵심 포토존이다. 

 

경치안내판

 

 

 

 

 


5층 역사관

1894년(갑오경장)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역사 자료와 유물, 영상 등을 시간의 흐름대로 보여주는 전시공간이다.  

 

 

▼ 박물관 건물 역사

6·25전쟁 이후 미국의 지원과 한국 정부의 자금으로 건립되었다. 1961년에 지금의 미대사관과 쌍둥이 건물로 지어져 국가재건최고회의, 경제기획원,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로 사용되었다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2012년 개관했다.

 

 

 

 

▼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1902)
1902년 대한제국은 근대국가로서 위상을 높이고,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기 위해 애국가를 제정하고, 가사와 악보를 실은 소책자를 국내외에 배포했다. 대한제국의 군악대 지휘자였던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하였다.

 

▼ 에릭손 전화기 (1890년대)
스웨덴 에릭손 회사의 자석식 전화기이다. 오른쪽 손잡이를 돌리면 발전기가 회전해 신호를 전화교환기로 송출해 준다. 1890년대 궁내부에 처음 설치되면서 사용된 것과 동일 모델로 알려져 있다.

 

▼ 국채보상금 모금 장부 (1907)
1907년 국채보상금 모금 내역을 기록한 회계장부들이다. 단연상채회는 담배를 끊어 빚을 갚는 모임이다. 모금한 돈을 의금(의로운 돈)으로 부르고 있다.

 

▼ 일본인이 그린 청일전쟁 판화 (1894)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군대를 파견해 조선의 왕궁과 서울을 먼저 장악하였다. 이 과정을 일본의 시각에서 그린 판화이다. 당시 전쟁 소식을 궁금해하는 일본인을 위해 이와 같은 판화가 많이 제작 판매되었다.

 

▼ 한일병합조약문 (1910)
1910년 8월 22일 이완용 내각총리대신과 데라우치 마사다케 통감이 서명한 한국병합에 관한 협정문이다. 이 조약의 체결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완용은 대표적인 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이름을 남겼다. 

 

▼ 태극기 목판
3·1운동 때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데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목판이다.

 

가운데 사진이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한국병합기념화보 (1910)
1910년 9월 28일 일본 오사카 신보에서 한국병합을 기념해 제작한 화보이다. 인물사진에서 대한제국 황족 이외에도 일제로부터 직위를 받은 이완용, 이하영, 송병준, 민병석, 김윤식, 윤덕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백미 포대 (일제강점기)
30킬로그램 백미 포대이다. 조선총독부는 1932년 조선곡물조사령을 제정해 각지 지정 검사소에서 주요 곡물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였다. 인천카도마루정미소는 인천의 일본인 기업가가 1934년에 설립한 주식회사이다. 

 

▼ 역사 속 이야기 1

소설가 구보 씨의 '경성 산책'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전개되는 작은 영상실이다. 5층 역사관에 '역사 속 이야기 1실'부터 ~8실까지 총 8개의 영상실이 있다. 

 

▼ 강주룡의 인터뷰 중에서 <동광> (1931)

우리는 49명,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직공의 임금 감하의 원인이 될 것임으로 우리는 죽음으로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2300명 우리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하여 내 한 몸뚱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이래서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에 올라왔습니다. 

 

 

▼ 신편 고등국어독본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국어는 일본어였다. 3·1운동 이후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 개정으로 중등교육과정은 4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 본서는 4학년 국어 교과서이다.

 

▼ 에디슨 축음기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축음기 형태로 원통에 홈을 파서 소리를 녹음하고, 바늘을 사용해 소리를 재생시키는 장치이다. 구한말에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는 원반형 음반을 재생시키는 형태로 대체되어 갔다.

 

▼ 조선방송협회 보급형 3호 라디오 (1930년대)
조선방송협회에서 청취료를 확보하기 위해 시중에 저렴하게 보급한 라디오이다. 한국에서 정규 라디오 방송은 1927년 일본어로 시작되었고, 한국어 방송은 1933년 제2방송으로 추가되었으나 1943년 중단되었다.

 

▼ 라디오청취료 영수증 (일제강점기)
1943년 조선방송협회가 월 청취료 75전을 받고 발급한 영수증이다. 라디오 등록대수는 1927년 한국인 949대, 일본인 1481대에서 1942년 한국인 14만 4912대, 일본인 12만 5882대로 증가하였으나, 100가구당 보급률은 일본인 73대, 한국인 3대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

 

 

● 전시 강제동원과 저항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시기에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인에게 전쟁을 위한 삶을 강요하였다. 임금의 강제저축은 물론이고 생필품과 식량의 유통과 소비가 통제되어 궁핍한 일상이 이어졌다. 학생과 여성도 군사훈련과 근로작업을 해야 했다.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뀌어야 했고, 일본국민으로서의 애국심이 요구되었다. 위험한 일터와 전쟁터에 동원되어 생명이 위협받고, 인권이 짓밟혔다. 그러나 한국인은 반전반일의 유언비어 유포와 낙서로 저항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 아쓰다신궁 참배에 동원된 여자근로정신대 소녀들

 

▼ 농업보국청년대 완장
농업보국청년대는 조선총독부 주도로 1940년경부터 총 15회에 걸쳐 한국의 농촌 청년들을 일본농가에 파견해 노동력을 제공한 제도이다. 청년들은 토목건축 노동현장까지 동원되어 무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 임시의정원 제34회 의원일동 기념촬영 (1942)

 

▼ '한국인과 중국인이 연합해 일본을 타도하자' 구호를 쓰고 있는 조선의용군 대원

 

▼ 1943년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의 반일 시위

 

 

▼ 역사 속 이야기 3

상영 제목은 ' 접어둘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 미군정 홍보 포스터 (1946.11)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이 분할된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터다. '남과 북의 통일은 여전히 교착상태에 있지만, 군정의 임무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 신탁통치 반대 성명서

 

 

 

 

▼ 5·10총선거 투표함 (1948)
5·10총선거 당시에 사용되었던 목재 투표함이다

 

▼ 5·10총선거 포스터 (1948)
제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총선거 포스터이다. '총선거로 독립문은 열린다', '기권은 국민의 수치', '투표는 애국의 의무' 등의 문구를 통해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 최초 국정교과서 <바둑이와 철수> (1948.10.)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문교부가 최초로 발행한 국정 국어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이다. "바둑아, 바둑아 나하고 놀자"와 같은 식으로 소리, 글자, 단어, 문장을 동시에 가르치는 방식을 도입했다. 

 

 

▼ 6·25전쟁 참전 유엔군 서명 태극기 (1950년대)
6·25전쟁에 참전한 미 공군 Dikerson이 유엔군의 사인을 받은 태극기이다. 사인과 함께 이름, 소속, 출신지역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강릉, 진해, 대구 등지에 있던 비행단이 "K-18 Kangnung", "K-10(Chin Hai)", "Taegue" 등으로 적혀있다.

 

▼ 유엔 6·25전쟁 참전 미국 장병들에게 수여된 메달 (1950년대)

 

 

 

▼ 1960년 정·부통령 선거 자유당 포스터
1956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된 것을 의식해서 "이번에는 속지말고 바로뽑자 부통령"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승만대통령이 고령이었기 때문에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 1960년 2월 28일 대구 학생 시위, 3월 15일 부정선거, 4월 19일 학생 의거 혁명이 일어나고, 이로써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 5·16 군사정변 화보
5·16군사정변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공보부에서 발행한 화보이다. 군사혁명위원회에서 발표한 6개 항의 혁명공약과 정변 주체들의 활동상을 담은 사진을 싣고있다.

 

▼유신 홍보 포스터
1972년 10월 선포된 유신헌법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각종 선전구호들과 통계자료를 실어 유신헌법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 똘이장군 포스터 & 반공 포스터

똘이장군 포스터는 1978년 개봉한 김청기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똘이장군 제3땅굴편'의 광고용이다. 반공을 주제로 한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1975년에 발견된 제3땅굴을 소재로 하여 제작되었다. 반공포스터는 불온 선전물 신고를 독려하는 포스터이다. 수거한 불온 선전물을 우체함에 넣거나 파출소에 신고하면 공책이나 연필과 같은 소정의 포상이 주어졌다.

 

▼ 교련복
1960년대 말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자, 정부는 안보강화를 목적으로 1969년부터 교련 과정을 신설하여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1990년 대학에서는 폐지되었고, 1993년에는 고등학교에서도 안전교육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조약 및 협정 해설 (1965)
1965년 6월 22일 타결된 한일기본조약과 부속된 4개의 협정 내용을 해설하기 위해 정부에서 발간한 책자이다. 각 조약 및 협정의 성격과 교섭경위, 그리고 조문별 해설을 싣고있다.

 

▼ 월남전 자료 및 유물

 

 

 

▼ 밀가루 포대 (1950~1970년대)
효성물산주식회사에서 생산한 밀가루 포대이다. 1960년대에는 이처럼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은 원재료를 가공하여 판매하는 형태의 산업이 발달하였다.

 

▼ 경제개발계획과 중화학공업화
박정희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경제성장을 추진하였다. 처음에는 수입품을 대체하여 자립경제를 이룩하려 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후 수출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전환한 뒤 의류와 같은 노동력에 의존하는 산업 위주로 수출을 늘려갔다. 1960년대 후반부터 고속도로 등 기반 시설을 확충하였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중화학공업을 적극육성하여 대규모 산업단지를 육성하였다. 그 결과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었다.

 

 

 

▼ 대한민국 1호 고유모델 자동차 현대 포니1

 

▼ 금성 텔레비전 VD-191
1966년 금성사에서 출시한 최초의 국산 흑백 텔레비전이다. 당시 제조업 근로자의 1년치 수입에 해당하는 고가였음에도 수요가 높아 공개추첨방식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 금성 라디오 A-501
1959년 금성사 부산공장에서 출시한 최초의 국산 진공관 라디오이다. 이전까지는 일본에서 제작한 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이 제품을 시초로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하여 완제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 삼성전자 텔레비전 BT-358KD
1975년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텔레비전이다. 같은 해 삼성전자는 국내 전자 회사 중 처음으로 월 3만대 이상의 텔레비전 수출을 달성하였다.

 

1950년대 후반 라디오의 생산과 보급이 많이 증가하여 신문, 잡지와 함께 라디오가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대중매체가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텔레비전이 대중매체의 중심이 되어갔다. 정부는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하는 등 전자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펼쳤다. 그 결과 1970년 초 텔레비전 보급 대수는 100만대를 넘겼다. 

 

 

 

 

 

 

 

 

▼ 제74기 새마을지도자반 기념 앨범 & 새마을 지도자의 집 문패 & 새마을 지도자증 & 우수 새마을 지도자 포상품

 

 

 

 

▼ 표준전과
교학사에서 발간한 국민학교용 전 과목 학습 참고서로 교과서에서 나오는 문제의 풀이방법과 정답이 수록되어 있어 <동아전과>와 함께 당시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유신체제와 민주화 운동
1972년 박정희 정부는 영구집권을 위해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장악하여 국가권력을 독점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무력화하는 유신체제를 만들었다. 언론을 통제하고, 검열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등 국민의 일상까지 억압하였다. 이에 야당과 학생, 지식인들이 유신반대운동을 벌이자 긴급조치를 잇달아 발동하여 민주인사들을 투옥하거나 해직하였다.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로 촉발된 체제의 균열은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과 유신체제의 종말로 이어졌다. 

 

 

 

▼ 민주구국선언문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반유신 반독재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한 선언문이다. 유신헌법의 폐지, 유신체제 반대, 긴급조치 9호 해제, 미 의회에 대한 현금사건 규명 등 4가지의 결의사항을 담고 있다.

 

 

 

▼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광화문 풍경' 공간으로 이동한다.

 

 

 

 

 

▼ 6월 10일은 국민행동의 날입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제작한 국민대회 개회와 대회 진행, 행동요령을 안내하는 전단이다. 애국가 제창이나 경적시위, 종교계의 타종과 국민 만세삼창과 같은 참여 행동요령을 안내하고 있다. 

 

▼ 1987년 6월 29일자, 조선일보 호외 → '노대표 직선제 개헌 선언' 

 

 

▼ 서랍을 열어서 당시 후보의 선거전단지를 살펴볼 수 있다.

 

● 민주주의의 진전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로 16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였다. 신군부 출신의 노태우 후보가 김영삼,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됨으로써 민주진영은 정권을 잡는데 실패하였다. 하지만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헌법재판소가 설치되었고, 과거 청산을 위한 5공 청문회가 열렸다. 또 최저임금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어 불평등을 시정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민주화와 사회적 평등의 확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1987년 629선언으로 직선제개헌운동은 끝났지만, 이후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노동자는 민주노조 건설과 작업현장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노동자 대투쟁을 전개하였다. 서민운동가와 농민, 빈민, 환경운동가들도 활발하게 사회적 민주화와 생존권을 요구하였다. 여성계는 호주제 철폐운동을 전개하였고, 장애인의 복지를 주장하는 인권운동도 일어났다.

 

 

 

 

 

 

 

 

 

▼ 좌측 첫 번째는 1963년 여권이다. 1961년에 여권법이 제정되면서 문서 형태가 아닌 수첩 형태의 여권이 등장했다. 두 번째는 양식이 크게 변경된 1980년 여권으로 컬러 사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1990년, 네 번째는 1991년 여권으로 해외여행 자유화와 더불어 현재의 형태로 변화한 여권이다. 해외로의 진출이 많아지면서 출입국 심사가 길어지자 1994년부터는 기계 판독 여권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 호돌이의 탄생
88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가 들어간 각종 기념품이다. 마스코트 호돌이는 바덴바덴의 기적으로 개최가 결정되자 올림픽 마스코트 공모전을 통해 선정되었다. 당시 생산된 모든 물건에는 호돌이가 새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호돌이가 들어간 화문석까지도 제작될 정도로 모든 상품에는 호돌이가 등장했다.

 

 

 

▼ 역사 속 이야기 7

상영 제목은 '그을린 시대 사람들'이다.

 

 

 

 

 

 

 

휴대폰의 변천

 

 

 

 

 

 

 

5층에서 4층으로 이동

 

 


4층 - 말랑말랑 현대사 놀이터

신·구세대가 함께 현대사의 그때 그 시절을 체험하며, 다른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10명의 인물을 선택해 그들이 겪었던 역사의 순간을 알아볼 수 있다.

 

 

소형 트럭 삼발이

 

 


2층 - 기획전시실 / 카페

 

 

 

 


1층 - 안내데스크 / 현대사도서자료실

 

 

 

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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