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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따라/국내여행

운산정(봉화) .... 2026.05.31

by 금대봉 2026. 6. 1.

 

 

 

운산정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길 61-470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의 문명산(文明山/ 893m) 자락에 위치한 운산정(雲山亭)은 수려한 자연 조망과 깊은 역사적 서사를 간직한 정자다. 문명산 산행 도중에 들러보게 되었는데 접근로가 험난하다. 낙동강변 북곡교에서 운산정까지 평길 1km, 비탈길 2km를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데, 길이 좁고, 가파른 외길 도로라 차량 교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험하기 때문에, 보통은 도보(등산 코스)나 트레킹을 통해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곡교 & 보호수

 

 

북곡교에서 윗두실 마을 방향으로 진입

 

북곡보건소

 

명호초교 북곡분교장(폐교)

 

 

북곡리 마을회관

 

북곡리 마을회관을 지나 110m 떨어진 지점의 갈림길에서 좌측 좁은 도로를 따라간다. 이후부터 상당히 가팔라진다.

 

 

산중턱에서 민가 두어 채를 만난다. 

 

마중 나온 견공

 

민가를 지나고 나서 바라본 청량산

 

 

도로가 아스팔트에서 시멘트로, 다시 비포장으로 바뀌었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만만치 않게 가파르다. 

 

험난한 비탈길 2km를 넘게 오르자 꽉 막혔던 숲이 벗겨지면서 광활한 초지가 나타난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운산마을이다. 

 

늙은 은행나무와 운산정 대문 

 

대문 앞의 안내석

 

 

 

운산정 입구 안내석의 글

이곳은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 공이 임진왜란(서기 1592년) 때 태조 영정을 모시고 피란한 곳이다. 선생은 당시 경주 집경전(조선 태조 영정을 모신 곳) 참봉으로 재임 중 왜란을 당했다. 동래, 울산이 함락되고, 사태가 급해지자 주변에서 영정을 땅에 묻자고 했다. 그러나 공은 영정을 하고, 서울로 옮기고자 안동을 지나며, 가족이 걱정되었지만 집에도 들르지 않았다. 제천에 이르러 충청감사에게 물으니, "왕도 이미 피란길에 올랐고, 길 또한 막혔으니 되돌아가 안전한 곳에 봉안하여 평정을 기다리라"는 회보를 듣는다. 돌아오는 길도 힘들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길도 집도 없는 이곳에 영정을 안전하게 봉안하니 조정에서는 그 공으로 선생을 양구 현감으로 제수하였다. 정조 때 이 지역을 입안(조선왕조 때 중앙관서에서 주는 인증) 받아 후손들이 보전하고, 유림에서 서원을 세워 제향 하니 선생의 충의와 덕망은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빛나다. 후손들이 여기에 정자를 짓고 보전한 지 어언 300여 년. 그동안 몇 번의 수리를 하였으며, 다시 작년 4월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중수하고, 조상의 유적지를 영원히 보존하고자 이 표석을 세우다.

서기 2001년 10월. 청주정씨 운산유적 보존회.

 

 

 

 

 

운산정(雲山亭)

조선 중기의 학자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수려한 경관의 구름재 마을 이름을 빌려 운산정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학자의 호를 따서 정자 이름을 짓는데 반해 이곳은 마을 이름을 붙였다. 풍수설로는 갈화낙지(葛花落地) 명당이라 한다. 운산정 일대가 사방이 산으로 가려져 밖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지형이라 임진왜란과 6·25 전쟁 당시에도 화를 입지 않았던 전란 피난처라고 한다.

 

 

 

 

운산정 담벼락 옆에 있는 구름재 유일의 민가

 

운산정에서 바라본 청량산 뒤태

 

하늘다리 줌인

 

운산정은 청량산의 뒤태를 보는 조망 명소로 알려져 있지만 주로 문명산 등산객들이나 이곳을 아는 사람만 찾는다

 

5만 평 이상의 넓은 구름재 초지에 운산정과 사람이 거주하는 민가 한 채뿐, 나머지는 모두가 인삼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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