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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따라/국내여행

전주이씨 삼효 정려(세종시) .... 2025.12.14

by 금대봉 2025. 12. 15.

 

 

 

세종시 서남쪽의 무학봉 산행을 하던 중에 사덕골길 앞고개에 위치하고 있는 전주이씨 묘역과 정려각을 들러보게 되었다. '전주이씨 삼효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시의 향토문화유산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효자 이정환(李廷煥, 1604~1671), 그의 손자인 이경설(李景卨, 1650~1708), 이경익(李景益, 1655~1708) 등 이 세 사람의 효행을 세상에 널리 알려 칭찬하고 기억하기 위해 나라에서 하사한 명정을 현판으로 걸어놓은 정문이다.

 

 

 

 

증종정대부전주이씨공신도비

 

정려각 앞에 세운 '국치비가' 표석

 

 


국치비가(國恥悲歌)
1636년(인조 14)에 발발한 병자호란의 치욕과 슬픔에 대한 분한 심정으로 외출을 삼가하고 지은 비가(悲歌) 10수가 이정환의 문집인 송암유고(松巖遺稿)에 실려 있다. 제작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작품의 소재인 병자호란의 국치와 이정환의 사망 연대로 보아 1636(인조 14)에서 1673(현종 14)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본문은 나라를 잃은 비통함, 임금을 잃은 충신의 슬픔, 후손과 조상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책, 그리고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본문 주요 내용 요약 

제1수: 꿈속에서 요양에 간 왕자를 뵙는 듯한 기쁨을 표현
제2수: 청나라 사신에게 볼모로 잡혀간 두 왕자의 안부를 묻고, 나라를 위해 죽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
제3수: 항우를 달랠 이가 없듯, 나라의 치욕을 누가 해결할지 슬퍼하며, 현명한 신하의 출현을 바람
제4수: 박제상처럼 충절을 지킨 인물이 사라진 현실을 슬퍼함
제5수: 세월이 흐르며, 옷을 기워줄 사람도 없는 외로운 신하의 처지를 노래
제6수: 조정에 무신은 많지만 치욕스러운 화친을 막을 자가 없음을 한탄
제7수: 궁궐의 달 밝은 밤, 임금의 근심과 백성에 대한 걱정을 함께 노래
제8수: 자연의 평온함과 대비하여 인간사의 치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냄
제9수: 충절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
제10수: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고 후세에 교훈으로 삼을 것을 촉구

 

 

 

 

전주이씨 삼효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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