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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예박물관 .... 2026.08.15

금대봉 2026. 8. 15. 21:32

 

 

서울공예박물관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4

 

 

 

서울공예박물관은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이다. 서울시에서 구 풍문여고 건물 5개 동을 리모델링해서 2021년 7월 개관했다. 이번 전시는 건물 5개 동 중 상설전시실인 전시3동만 들어갈 수 있었다. 전시1동과 전시2동은 차기 기획전시 준비로 휴관 중이었고, 전시0동은 안내동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전시4동은 어린이박물관이다. 전시3동은 1층 교육실, 2층과 3층은 직물공예 상설전시실, 4층은 보존과학실로 구성돼 있다.

 

 

 

 

 

 

● 관람안내

 

 

 

박물관 전시실 배치도

 

박물관 광장

 

전시3동 현관

 

전시3동 1층 로비의 '사전가 허동화' & '아향 박영숙' 부부 흉상

 

 

 

< 흉상 소개 글 >

사전가 허동화 (絲田家 許東華)
허동화(1926~2018)는 부인 박영숙(1932~2026)과 함께 생전에 수집한 자수품과 보자기를 포함한 소장품 5,000여 점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는 우리 직물공예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1960년대부터 자수품과 보자기를 비롯한 우리의 옛 복식과 침선 도구, 실내 장식품 등을 지속적으로 수집하였다. '사전가'는 허동화의 아호이다.

 

 

< 흉상 후면의 글 >

"나는 수집가로서 보람을 느낀다. 수집에는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사회나 국가, 더 거창하게는 인류에 공헌하고자 하는 큰마음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허동화, <수집, 발품 팔고, 공 들이고> 中

 

 

< 흉상 우측 벽면의 글 >

사전가(絲田家)라?
사전가는 기증자인 고 허동화의 아호이며, '사전(絲田)이 사는 집'이란 뜻이다. 허동화는 생전에 자신의 호를 설명하면서 "사(絲)는 수놓을 때 쓰는 가는 실을 뜻하고, 여기에 밭 전(田) 자가 붙어 실처럼 가늘고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두렁 길이나 실밭을 의미한다" 하였다. 그는 시골에서 태어난 걸 자랑스럽게 여기며, 평생 촌사람으로 살고자 이 아호를 지었다.

 

 

 

 

 

 


금지옥엽 - 티없이 무럭무럭 자라라

 

 

 

 

▼ 어린이 옷들

어린이 옷은 어른 옷보다 한층 화려하게 지어 입혔다. 여러 빛깔의 천을 이어 만든 색동저고리와 정성스레 수놓은 두루주머니에는 나쁜 기운부터 아이를 지켜주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태어나 처음 맞는 생일에는 옷에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무늬를 장식한 돌띠를 만들어 붙였고, 이러한 장식적인 요소 외에 아이의 활동성을 고려한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 치마와 바지가 어깨까지 이어져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거나, 바지의 경우 구멍을 뚫어 용변을 보가 쉽게 만들었다. 겨울에도 따뜻하도록 누빈 타래보선에는 끈이 달려 고정할 수 있도록 했다.

 

 

 

 

▼ 자수 구운몽도 병풍 (견에 자수 / 19~20세기)
조선 숙종 때 문신 김만중(1637~1692)이 지은 소설 <구운몽>의 내용을 그림으로 구성하여 수놓은 병풍이다.

 

 

 

 

▼ 자수 벽동자도 병풍 (견에 자수 / 19~20세기)
아이들의 놀이 장면을 그린 10폭 병풍이다. 백동자도의 백(百)은 숫자 100과 더불어 많다는 의미를 지니며, 그림에서는 다산을 기원하고 태어난 아이의 출세와 장수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 자수 화조도 병풍 (견에 자수 / 19~20세기)
꽃과 새가 있는 풍경을 수놓아 꾸민 10폭 병풍이다. 폭마다 매화, 연꽃, 모란, 석류, 오동나무와 소나무를 배경으로 곳곳에 원앙, 물총새, 봉황, 학과 나비가 짝을 이루고 있다. 마치 두 개의 폭이 하나의 화면처럼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목민지관 - 뜻을 다해 백성을 살펴라

 

 

 

 

▼ 활옷 (견에 자수 / 19~20세기)
다채로운 무늬를 색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여성 혼례복이다. 뒷길에는 부부 금실과 자손 번창을 기원하며 봉황,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생명력을 뜻하는 연꽃,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원앙 등을 위에서부터 수놓아 신부의 앞날을 축복했다. 소매와 앞길에도 바위 위로 피어난 커다란 모란을 장식하여 부귀를 누리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 조선 전기에 공주와 옹주들이 혼례 때 입던 예복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평민에게도 허용되어 모든 신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상징이 되었다. 

 

 

 

 

▼ 조복 (견에 자수 / 19세기말)
이 조복은 민철훈(1856~1925)이 착용하던 것이다. 국가의 중요한 의식이 있을 때 입는 조선시대 관료의 예복이다. 사진은 겉옷인 적초와 허리에 두르는 띠와 장식인 대대와 후수이다. 적초는 용 문양이 있는 붉은색 비단에 깃과 소맷부리, 도련에는 검은 천으로 둘렀다. 후수는 붉은 비단에 파랑, 노랑, 흰색 순으로 학을 수놓았다. 후수에 달린 항 쌍의 환과 수 놓인 새의 종류는 관품에 따라 다르게 장식했다. 

 

 

 

 

▼ 행 구성군수 오일영 자수 만민만송덕 병풍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견에 자수 / 1898년)
이 유물은 자수 병풍의 형식으로 제작된 지방관 송덕 기념물로는 현재까지 유일하다. 1898년 12월에 평안북도 구성군 일대의 사람들이 구성군수인 오일영(吳一泳, 1897~1900) 재임의 공덕을 구성군 지도와 함께 수놓아 제작한 병풍이다. 열 폭으로 구성된 두 틀의 병풍으로 총 20폭에 이른다. 아래의 사진은 두 번째 틀이다. 병풍 구성은 첫 번째 틀에서 1~3폭은 병풍의 제목과 오일영의 공적에 대한 '송덕기'가 수놓아져 있고, 4폭부터 두 번째 틀의 6폭까지는 병풍제작에 참여한 구성군민의 이름이 다양한 색실로 수놓아져 있고, 마지막 4폭에는 구성군 일대의 산, 명승, 명소, 사찰 등의 이름이 평수, 자릿수, 이음수 등 다양한 자수로 그려져 있다.

 

 

 

 

▼ 자수 노안도 병풍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견에 자수 / 1905년)
갈대숲 속에서 기러기들이 평화롭게 날고 노니는 '노안도'를 수놓아 만든 열두 폭 병풍이다. 한자 노안(盧雁)이 편안한 노후를 뜻하는 노안(老安)과 음이 같아 노후의 행복과 건강을 바라며,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주제이다. 이 병풍은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 석연 양기훈의 노안도를 밑그림으로 하여 수를 놓은 것이다.

 

 

 

 

▼ 자수 사계분경도 병풍 (보물 / 견에 자수 / 고려 후기)
현존하는 자수 병풍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쪽마다 다른 계절에 피는 꽃나무가 담긴 화분을 수놓아 만든 네 쪽의 병풍이다. 오른쪽 첫 번째 폭부터 봄을 묘사한 다섯 꽃잎의 꽃, 겨울을 상징하는 매화와 동백, 여름을 대표하는 연꽃, 마지막은 가을을 의미하는 포도를 수놓았다. 세 번째 폭에는 夏蓮(하련). 네 번째 폭에는 草龍(초룡)이란 글자를 수놓았다. 사각형의 그림에 직물로 테두리를 둘러서 만드는 일반적인 밥법과는 달리 사각형의 직물 안에 자수가 놓인 원형 직물을 배치한 보기 드문 구도를 하고 있다. 

 

 

 

 

▼ 자수 곽분양 행락도 병풍 (견에 자수 / 19~20세기)
중국 당대에 안녹산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양왕에 봉해져 곽분양으로도 불리는 곽자의(697~781년)의 생일잔치 장면을 수놓은 병풍이다. 관료로 성공하고, 천수를 누리며, 자손도 많아서 부귀공명의 상징이 된 그의 생일잔치를 묘사한 병풍으로 우리나라에서 18세기 이후 등장하였는데, 주로 혼인과 회갑연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극락왕생 - 내세에 복되어라

 

 

 

 

▼ 좌측 그림... 자수 연화당초문 현우경 표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견에 자수 / 조선후기)
현우경은 부처님과 그 제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전생 이야기를 통해 착하게 살고, 불교와 인연을 맺을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경전이다. 책의 맨 앞장과 뒷장을 보호하고, 장식하는 목적으로 덧씌우는 책의(冊衣)는 연꽃, 복숭아, 석류 둥을 수놓은 견(絹)으로 작심하여 귀함에 귀함을 더했다. 

 

 

▼ 우측 그림... 일월수 다라니 주머니 (국가민속문화유산 / 단에 자수 / 19세기)
발원(發願)한 청신녀가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극락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연꽃이 피어난 모습으로 형상화한 한 쌍의 주머니이다. 주머니에는 머리를 삭발한 보살이 머리 위 연꽃으로 연결된 줄을 잡은 모습이 수놓아져 있고, 다시 연꽃 안에는 해 뜨는 일광보살을 상징하는 삼족오, 달 뜨는 월광보살을 상징하는 방아 찧는 토끼가 실로 그려져 있다. 주머니 앞면의 글자로 보아 법명이 '허공화'인 상궁 김씨 '묘진화'인 상궁 유씨가 극락왕생을 염원하며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 자수 연지화조문 방석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견에 자수 / 조선후기)
연꽃이 핀 못을 배경으로 꽃과 새를 수놓은 방석이다. 중앙에 연꽃, 매화가 활짝 핀 연못에 한 쌍의 새와 괴석을 배치하였다.

 

 

 

 

▼ 김선희 혼례복 (국가등록문화유산 / 단 / 1935년)
1935년 김선희(1919~2007년)가 근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 김광균(1914~1993년)과 결혼할 때 입은 원삼이다. 김광균 집안에서 제작하여 신부 측에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에 의해 삼베 수의가 보급되기 전에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입은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혼례복을 수의로 사용하던 오랜 풍습이 있었는데, 이 혼레복 역시 김선희가 수의로 사용하려고 보관하다 그 따님인 전 서울특별기 무현유산 매듭장 명예보유자 김은영에게 남긴 것을 서울공예박물관이 기증 받았다. 

 

 

 

 

▼ 자수 가사 (보물 / 단에 자수 / 19세기)
보물 <자수 가사>는 불보살존자 100명과 경전 25권의 도상을 수놓은 25조 대가사이다. 첫째 단에 부처, 둘째와 셋째 단에 보살, 넷째 단에 경전, 다섯째 단에는 존자가 있으며, 가사 중앙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부처와 보살이 왼쪽과 오른쪽을 향해 있다. 

 

 

 


보자기 할아버지 - 허동화

 

 

 

▼ 허동화 제작 브로치

 

 

▼ 가을의 풍경 (허동화 / 견 / 1912년)

 

 

 

 

 

 


조선 왕실에서 대한제국으로

 

 

 

 

▼ 아래 사진은 왼쪽부터 대대·수, 적의, 패옥 순으로 나열돼 있다. 대한제국기 황태자비가 입은 9등 적의를 재현한 것이다. 가로 아홉 줄의 꿩 무늬가 옷 전체를 장식하며, 양어깨와 가슴에는 보가 달려있다.

 

 

 

 

▼ 좌.....의왕영왕책봉의궤 (보물 / 1900년)
1900년 고종의 아들 의화군 이강(1877~1955)과 이은(1897~1970)을 각각 의왕과 영왕으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어람본 의궤이다. 

 

▼ 우..... 의왕책봉금책문 (1900년)
의왕 책봉 시 제작한 금책문의 탁본을 묵은 첩이다. 표지는 녹색이며, 표지 명은 비어있다. 

 

 

 

 

▼ 의왕 원유관 (국가문화유산 / 19세기 후반~20세기)
미국 유학 중이던 의화군 이강(1877~1955)이 1900년 왕으로 책봉될 당시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원유관이다. 원유관은 조선의 왕·왕세자·왕세손, 대한제국의 황태자·친왕이 경축일, 조칙 반포, 가례나 책봉의 일부 의례에서 강사포와 함께 착용한 관모이다. 이 관은 정수리 앞뒤에 8개의 량(세로 줄)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각 량마다 붉은색, 흰색, 푸른색의 3가지 구슬로 장식되어 있다.

 

 

 

 

▼ 단령 (19세기 말)
의왕이 입던 단령이다. 단령은 옷깃이 둥근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왕자와 대원군, 관리 등이 착용했다. 

 

 

 

 

 

▼ 추봉책봉의궤 (보물 / 1907년)
1907년 순종이 즉위한 후 할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할머니 여흥부대부인 민씨, 형인 완화군을 추봉하고, 연원군부인 김씨를 의왕비로 책봉할 때 제작한 어람본 의궤이다. 금인과 금책 도설을 비롯해 추봉·책봉 의례 절차, 업무를 맡은 관원과 장인들의 명단, 사용한 물품 등이 기록되어 있어 대한제국기 진행된 추봉과 책봉의 전반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의궤는 당시 시대 상황과 공예품의 제작 양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유산이다.

 

 

 

 

▼ '운현궁'명 주칠 원반 (19세기 말)
주칠을 한 상판이 둥근 상으로 흑칠한 상판 아래는 '운현궁'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이 사가로, 이 반은 '大院君이 쓰던 상'이라 적힌 부표와 함께 전해져, 흥선대원군이 운현궁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보인다. 

 

 

 

 

 

 

▼ 임인진연의궤 (1902년)
1902년 고종의 51세 기로소 입소와 즉위 40주년을 축하하는 국가적 잔치의 모습과 과정을 기록한 자료다. 총 4권으로 구성되며, 잔치를 뜻하는 진연의 준비 정차와 과정, 연향 장소, 진연 장면과 사용한 각종 기물, 악기, 복식 등 다양한 시각적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02년 열린 진연은 대한제국 전환 이후 황제국으로서의 면모와 황실 권위를 한층 강조하였다.

 

 

▼ 성원선계·첩갑 (19세기 말)

 

▼ 선원계보기략·책갑 (19세기)

 

 

 

▼ 순종 국종 기념 사진첩 (1926년)
1926년 4월 25일 순종이 승하하고, 6월 10일 진행된 국장을 경성사진통신사가 발행한 사진첩이다. 순종의 생전 모습과 함께 국당 의례의 진행 과정, 장례 행렬과 도심 풍경, 군중의 분위기가 담겨있다. 사진첩에 실린 흑백사진을 통해 대한제국의 장례문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황실 공예품을 지킨 여인들

 

 

 

 

 

▼ 순정효황후가 입었던 당의 (20세기 초)
당의는 궁중 및 양반층 여성들의 소례복이다. 

▼ 순정효황후가 사용한 스라단 (20세기 초)
스라단은 치마 무릎을 장식하는 기로띠이다.

 

 

 

▼ 당의를 입은 순정효황후

 

 

 

▼ 1893년 의화군 이강과 혼인하며 조선 왕실의 일원이 된 의왕비

 

 


★ 의왕 내외와 천주교

의왕 일가는 의왕궁(지명을 따라 사동궁으로도 불림)에서 생활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1937년 안동별궁 터에 새롭게 지어진 여관(女官) 거처에서 생활했다. 대한제국의 해체와 사회적 혼란으로 삶의 기반이 곤란한 가운데, 1955년 임종을 앞두고 가회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의왕은 선조들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속죄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의왕비 또한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입교하였다. 의왕비는 한국순교복지수녀회의 활동에 공감하여 소중히 간직하던 황실 유물들을 1953년부터 1956년에 걸쳐 수녀회에 기증하였다. 

 

 

 

▼ 사진 좌측부터 의왕비 세례문서, 의왕 세례 문서, 의왕비 세례 기념사진, 의왕비 지팡이이다.

 

 


보존을 넘어 치유로

 

 

 

▼ 왼쪽부터 첩갑, 법복사절복색, 국기복색소선이다.

 

 

 

▼ 벽에 붙어 있는 모양의 종이를 자르고, 접어서 원유관을 만들어보는 체험 공간

 

휴게공간

 

 


세 개의 질서, 하나의 풍경

 

 

 

▼ 세 개의 질서, 하나의 풍경 (권민호 작품 / 2026년)
트레싱지 위에 연필, 목탄, 터펜타인 워시, 건축도면 복제기법

 

 

 

 

 

 

 


보이는 수장고

 

 

 

 


보존 과학실

 

 

 

 

 


 

전시4동 어린이박물관

 

400살 이상된 어르신 은행나무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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